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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호(04월) |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의 소통 노력과 인맥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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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제장명(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충무공연구부) 작성일19-04-09 10:57 조회7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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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이순신의 소통 노력과 인맥의 활약


제장명(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충무공연구부)

 

Ⅰ. 서 론


지난 2014년 7월에 방영을 시작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명량’을 보면 해전을 지휘하는 이순신이 혼자서 지휘하고 활도 쏘고 칼로 백병전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장면이다.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전체 전황을 조율하면서 적절한 지시를 내리는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지휘로 수군 구성원들이 적절한 상황에 대처하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 것은 모든 것을 이순신 혼자서 수행했다고 하는 기존의 인식 때문이다.
이순신은 누가 뭐라 해도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오늘날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역사상 가장 큰 국난이었던 임진왜란을 맞아 바다에서 적을 물리쳐 나라를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순신과 함께 힘을 모아 나라를 구한 많은 인물들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조정에서, 동료수사들이, 부하들이, 그리고 그를 믿고 의지하던 많은 백성들이 이순신을 도와 국난을 극복한 사실을 알아야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라는 민족 미증유의 전쟁을 맞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심초사 진력하였다. 당시 조선은 건국한지 200년이 지나는 동안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시점에서 큰 전쟁을 맞아 전쟁수행 체계가 너무나 미비하였고, 빈한한 나라 사정으로 군수물자도 부족한 가운데 전쟁을 극복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을 파악한 이순신은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서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조직과 신분계층을 막론하고 상호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조정과 동료 수사, 부하와 백성은 물론 연합작전을 함께 한 명군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상을 막론하고 서로 간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이순신의 소통 노력은 성공을 거두어 주위의 인맥들은 아낌없이 힘을 모아 승리를 일구었다. 이순신의 소통 노력과 인맥들의 활약상을 살펴봄으로써 임진왜란 시기 해전 승리의 요인을 보다 정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필자가 2012년 출간한 『이순신 파워인맥33』(행복한 미래)의 내용을 요약한 것에다가 최근의 연구 성과를 부분 반영한 것임을 밝혀둔다.

 

Ⅱ. 본 론


  1. 조정과의 소통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조선 조정에서는 전쟁의 징후를 파악하고는 비변사에서 대책을 강구하였다. 이때 한성부 판윤으로 있던 당대의 명장 신립은 다음과 같이 건의하였다. “일본은 섬 오랑캐이므로 육전보다는 수전을 잘할 것이므로 일본군을 맞아 바다에서 싸우지 말고 육지에서 성을 쌓아 막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선조수정실록』24년 7월 ;『선묘중흥지』신묘년 7월조
 이러한 건의에 대해 당시 비변사에서는 옳다고 판단하여 전국의 병영과 수영에 적이 쳐들어오면 바다에서 싸우지 말고 육지에서 성을 쌓아 막으라는 지시를 한다. 한마디로 수군 폐지령인 것이다.
이러한 조정의 지시를 받은 이순신은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당시 이순신이 판단한 바로는 일본 수군은 전통적인 해적전술을 답습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해 일본군의 육전 능력이 더 뛰어남을 알고 있었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탈출해 온 백성들의 증언을 참고한 결과였다. 반면에 조선 수군은 사정거리 1km이상 되는 막강한 화포를 장착한 가운데 우수한 수군 전술을 구사하는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조선수군이 보유한 화포는 천자, 지자, 현자, 황자총통 등이었는데 이들의 사정거리가 800~1,200보 정도였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960~1,440미터이다.
 다시 말해 당시로서는 첨단 수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준비만 잘한다면 바다에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따라서 이순신은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적을 막을 때는 수군이 막아야 한다. 수군이든 육군이든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장계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보고가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수군 폐지령을 철회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수군이 발휘한 능력은 전쟁초기에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평양성까지 진격해 있던 일본군의 바다를 통한 보급지원을 무산시켜서 일본군이 남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한 것이다. 이렇듯 조선 수군에 대한 조정의 신뢰를 얻게 된 이순신의 건의는 탄력을 받게 된다. 예컨대 한성이 수복된 후 충청도 수군을 남쪽으로 내려 보내 달라는 요청이나, 삼도수군통제사 제도의 시행 건의 등이 제대로 관철된 것이다. 이후에도 이순신은 조정의 관련 부서와 계속적인 서신왕래와 인편을 통한 상황보고를 통해 수군의 현황을 정확하게 전달하여 긴요한 부문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편 이순신은 조정의 주요 인사들과도 소통을 하였다. 그 결과 수군의 형편이 조정에 잘 전달 될 수 있었으며 중요한 순간에 이순신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이순신을 정읍현감에서 6품계 위의 전라좌수사로 천거하였던 류성룡은 5년 이상 영의정직에 있으면서 이순신의 정책건의를 수용하여 그가 포부를 마음껏 펼치도록 도왔다. 예지력과 인재식별 능력이 뛰어난 지중추부사 정탁은 이순신이 투옥되어 생사기로에 섰을 때 ‘신구차(伸救箚)’를 올려 목숨을 구했다. 의정(議政)의 일원이자 전시(戰時) 최고위 행정관료직인 도체찰사 임무를 수행한 이원익은 이순신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조정에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이순신의 임무를 돕고 그의 위상을 높였다.

 

  2. 동료 수사와의 소통


임진왜란 초기 각도 수사 간의 위계는 수평적 관계였다. 이것은 1593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도 상호 존중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이순신은 동료 수사와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 수시로 만나 현안에 대한 협의를 함으로써 작전의 성공을 이루었다.
이순신보다 먼저 전라좌수사를 2번이나 역임한 정걸은 78세의 고령에도 이순신의 조방장을 자처하여 수십 년간의 근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문지식을 아낌없이 전해주었다. 이후 충청수사 직책을 수행하면서 한산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략전술을 심도 있게 논의하곤 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이순신보다 16세나 어렸지만 동급의 수사로서 이순신 함대의 한 축을 차지하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동급의 수사들과 항상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만은 아니다. 원균은 이순신에게 경상도 지역의 적정에 대해 수시로 알려줌으로써 해전 승리에 일조한 부분이 있다. 일부 장수들과의 관계에서도 상황에 따라 약간의 갈등이 노정되었지만, 소통을 통해 대부분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곤 했다. 하지만 원균과는 끝내 갈등의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충청수사 직책으로 한산도에 근무한 선거이는 이순신이 1587년 조산보만호로 근무할 때부터 우의를 다진 관계이다. 이순신은 선거이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 협조를 돈독히 하였으며 그가 본영으로 돌아갈 때는 작별의 시를 써서 전송하기도 하였다. 이순신이 명량해전 직전의 어려운 시기에 전라우수사로 보임한 김억추는 판옥선 1척을 끌고 와서 전력증강에 보탬을 주었으며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하였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은 이순신과 불과 4개월간 함께 있었지만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에 탄복하여, 이순신의 활동을 적극 도와 노량해전에서의 큰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3. 부하와의 소통


이순신은 평소 부하들과도 끊임없는 소통하였다. 함께 활을 쏘고 술을 마시고 오락도 함께 하면서 허심탄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휘하 장졸들이 전투에 적극 참가하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배려를 하였다. 이른바 상명하복식의 강압적인 태도가 아닌 부하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형태로 소통을 한 것이다. 예컨대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았을 때 휘하 장수들의 의견을 물은 후 그 뜻에 따라 출전여부를 결정하였다. 삼도수군이 통제영에 모여 있을 때 계급이 낮은 군졸들로부터도 작전에 적절한 제안을 할 경우 적극 반영하였다. 1594년의 당항포해전 같이 전력운용상 여유가 있을 경우 1594년 3월 당시 조선수군은 주력전투선인 판옥선을 120여 척 보유한 가운데 20~30척 규모의 일본군을 공격하는 상황으로 압도적인 전력차를 유지하였다.
 자신의 권한을 적절히 위임하기도 했다. 명량해전 직전의 어려운 상황에서는 솔선수범하여 선봉에서 부하들을 이끌었다. 이렇게 했기에 부하들은 불만이 없었고 작전에도 실패가 없었다.
이순신은 특히 부하들의 활약상을 조정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가 남긴 전투상황보고서를 보면 엄청난 분량이다. 이순신이 장문의 보고서를 쓰게 된 것은 전투의 배경과 경과, 적군의 피해상황과 아군의 전사자 및 부상자 명단, 노획물 목록 그리고 전공자명단에 포상 등급까지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투가 끝난 후 해당 지휘관은 전투결과를 상부에 보고한다. 전투 상황에 대한 전말을 수록하여 보고함으로써 그 전투의 상황에 대한 상부의 이해를 돕고, 전체 전황을 조율하는 근거를 제공함과 동시에 이 보고서를 통해 전공자에 대한 포상도 이루어진다.
이순신이 올린 보고서는 매우 상세했기에 해전에 대한 조정의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다. 전쟁에 참가한 장졸들의 공적과 피해가 고스란히 적혀있기에 그에 상응한 포상과 위로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이순신은 부하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줌으로써, 그를 믿고 따르던 부하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해전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왔다. 특히 이순신 휘하 참모와 주요 지휘관 중에는 매우 큰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도 많다.
예컨대 정운은 항상 선봉에 서서 적을 섬멸하는 데 중추적인 활동을 하였고, 권준은 이순신의 마음을 읽으며 이순신의 전략을 보좌함으로써 전체 전황에 대한 분석을 한 후 책략을 제시하였다. 어영담은 경상도지역으로 출동 시 물길을 인도하였고 전과(戰果) 면에서도 두드러진 인물이다. 동명이인 이순신(李純信)은 중요한 일을 성실한 자세로 잘 처리하였으며, 한산도해전 시 유인작전을 잘 구사하여 해전 승리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배흥립은 초기 해전부터 전과가 컸으며, 칠천량해전 이후 수군정비 시 이순신 측근에서 가장 심력을 다한 인물이다. 김완은 진중의 활력소 역할을 하였고, 장사 수완이 좋아 수군의 군량확보에 기여한 공이 컸다.
이순신의 감조군관이었던 나대용은 거북선을 제작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화약제조 비법이 비밀리에 전수되던 시절, 이봉수는 전라좌수군의 화약 제조를 담당한 최고의 화기전문가로 활동하였다. 정사준은 조선의 승자총통이 일본의 조총보다 단점이 많은 것을 인식하고는 정철총통을 개발하였으며, 송희립은 이순신의 군관으로 초기해전부터 곁에서 잘 보좌하였고, 노량해전에서도 이순신 사후 처리를 담당한 최측근이었다. 이순신의 종사관으로 근무한 정경달은 이순신이 해상 작전을 나간 후 행정 업무를 완벽히 대행하였다.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이순신이 이들과 소통하여 한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4. 백성과의 소통


이순신은 백성들과도 소통을 하였다. 백성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줌으로써 그들로부터 적정에 대한 정보제공도 받고 전선 건조와 무기 생산, 군량미 확보 등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이순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은 해전을 수행하는 중에도 끊이지 않았다. 한산도해전에서는 적을 넓은 바다로 유인하였는데, 이는 유사시 적들이 육지에 올라 백성에게 해를 끼칠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안골포해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해전에서는 아군에게 쫓기다가 퇴로를 봉쇄당한 적들이 우리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육지로 도망간 적에게 소규모의 운송수단을 남겨두기까지 하였다. 전과보다는 백성의 안위를 우선시 한 것이다. 적선을 나포한 후에는 혹시 포로로 붙잡힌 우리 백성이 있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한 뒤 불태워 없앴다.
이순신 대민관의 특징 중 하나는 백성들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전쟁을 극복해야 할 동반자로 보았다는 것이다. 수군의 형편이 열악하고 군수지원체계가 미흡할 때 여력이 있는 백성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것이 진정으로 적을 막고 백성을 보살피는 길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이순신을 신뢰한 백성들은 적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군지휘부에 알려주었다. 한산대첩의 승리는 미륵도에서 목자(牧子)로 근무하던 한 백성의 정보제공에 힘입은 바가 컸다. 군량미 확보를 위해 둔전 경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여수의 돌산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 설치한 둔전(屯田)에서 군량미를 마련하는 데 힘써 노력하였다. 수군세력이 약할 때는 기꺼이 후방에서 성원하였고, 심지어 전투에까지 참여하였다. 극적인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명량해전 후 13척만 남은 빈약한 수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군 재건에도 적극 참여하였는데, 불과 8개월 동안 고하도와 고금도를 거치면서 60여 척의 전선을 건조할 수 있었다. 수군 인력이 부족한 사정을 알고는 자원하여 입대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명 수군과의 연합작전에서 조선의 국가이익을 지킬 수 있었다.
이순신의 애민 리더십은 명군과의 연합작전에서도 발휘되었다. 포악한 명군에 의해 백성들의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과감하게 진을 철수하겠다는 위협을 가해 명군 지휘부로부터 재발방지 약속을 받기도 했다.

 

Ⅲ. 결 론

이와 같이 이순신은 다양한 신분 계층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모두가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이 한 곳에 모여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서 한마음이 되었다. 심지어 연합작전을 수행한 명 수군도 적극 동조하였다. 다양한 지역과 신분계층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휘하에서 한마음 한 뜻으로 전투에 임해 40여 회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요컨대 그의 해전 승리는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그의 소통 노력에 부응한 각 계층의 인맥들이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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